처음 :: 2008/05/06 17:33

2008년 5월 6일 화요일

 방금 썼던 글이 날아가서 기분이 그닥 좋지 못하다. 뭐, 별로 써 놓은 것도 없었지만서도. 음, 그러니까 무슨 얘기 중이었냐면, 요즘 내 기분이 싱숭생숭하다는 말 중이었다. 그래, 요즘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들뜬 것 같으면서도 의욕 없이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지금은 시험 기간이다! 그런데도 나는 공부는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다. 무슨 상관이랴! 간섭하는 사람도 없겠다, 학교에서 일찍 왔겠다, 지금이 딱 놀 때지. 안 그래?
 흠. 말하기가 창피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래, 이렇게 써 놓고서 다음날에 '사랑은 무슨! 그냥 좋아했던 거였잖아.'하면서 이 글을 삭제할지도 모르니, '좋아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를 덧붙이도록 하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좋아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새로 사귄 친구라서 계속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H 양께선 지금 잠을 주무시고 계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냥 나랑 문자하기가 귀찮아서 "나 낮잠 잘게~."라고 말로만 보낸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그렇게 믿겠어. 사실 지금쯤 깨어났을 것 같긴 하지만 역시나 나에게 문자를 보내기가 귀찮은 것이겠지.
 요즘 이 H 양 때문에 골치가 썩는다. 이 시건방진 녀석은 가끔 나와 있길 좋아하지 않는다. 날 약간 귀찮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즐거워 보이지가 않는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나를 그렇게나 좋아하더니! 나도 저를 좋아하니까 이제 마음이 가셨나 보다. 이제는 자신의 짝꿍에게 관심이 많은 H 양. 야자 시간이 끝나자마자 제 짝꿍에게 달려가서 까르륵대는 꼴이 여간 보기 싫은 게 아니다. 요즘은 시험 기간이라서 둘이 짝을 하지 않고 있는데, 둘이 다시 짝이 되면 그 꼴을 어찌 볼까 걱정이 된다.
 나랑 H 양이랑 문자도 하고 네이트온도 하는데, 온라인 상에서는 잘만 얘기하다가 오프라인 상에서 만나기만 하면 나는 말을 잊는다.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잃는다는 것도 아니라, 말을 잊는다. 잊어버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하다. 그 녀석도, 내가 웃으면서 말을 걸어도 무심하게 대답할 뿐이고. 나는 할 말이 없다. 빤히 쳐다본다. 그럼 또 왜 보냐 묻는다. 그러면 난 이번엔 말을 잃는다.
 화가 난다. 이 자식~, 나한테 그렇게 지극정성이었으면서! 새 친구를 사귈 때마다 그러겠지? 봐, 지금도 짝꿍이랑 웃고 재밌게 놀잖아! 나도 저랑 놀고 싶어서 안달난 줄은 모르고! 그렇지만 꾹 참는다. 나는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특히나 짜증날 때는 그 짜증을 숨긴다. 그래, 내가 조금 쿨한 척의 여왕인것 같다. 하여튼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 갑자기 나타나서 "짝꿍이랑 놀지 마! 나랑만 놀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H 양은 나와 대화할 때도 종종 짝꿍의 이름을 언급한다. 그러면 나도 맞장구를 쳐 준다. 전에 그 아이가 말하기를, "친구 A하고 놀다가 B 얘기를 하면 너무 싫어하는 거야! 그게 재밌어서 A한텐 자꾸 B 얘기해." 하길래 나는 그냥 입을 다문다. 즐거워한다. 그러다 보면 말겠지, 생각하면서. 그치만 언제 마는 거야!
 그 애가 이 글을 볼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녀석은 컴맹이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바보다, 바보. 내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은 누구도 모른다! 매우 희박한 확률로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은 알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당신도 나의 본명과 얼굴을 모르니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내 가족, 친구들이 내 본성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H 양에게 "나 게이야. 너 좋아해. 사귈래?"라고 묻는다면 그 앤 까무러치겠지. 그리고 도망가겠지. 안 봐도 뻔해.
 H 양이 한동안 내게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평소엔 학교가 끝나면 문자를 먼저 보내 주던 녀석이, 학교가 끝나도 문자가 없고 설령 와도 두세 개 보내다가 "그럼 잘자."하고 끝내 버렸다. 나는 참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애가 언제까지 나에게 문자를 이따구로 보낼 것인가. 생각해 보면 시험 날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렇게 보낸 걸지도 모른다. 애매하게 시간이 그렇게 겹쳐서, 내게 질린 건지 시험 때문인지 판가름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계속 기다리다가 시험 첫 날,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문자를 하게 됐는데 꽤 오랫동안 하게 되더라. 나랑 문자가 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 그냥 끊기가 어려워서 그런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냥 같이 문자를 보낸 것이다. 난 그게 또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아서 하루 종일 즐거웠다. 난 그렇다. H 양과 얘기하는 게 좋다. 문자를 보내는 것도 좋고, 채팅하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곁에 있을 때는, 내 옆에서 지루해 하는 것이 너무 빤히 보여서 피하게 된다.
 H 양이 날 슬쩍 피하는 것이 나의 저돌적인 접근 때문인가?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만 나는 H 양이 좋은걸! 내 앞에서 혼자 앉아 있으면 접근하고 싶어서 몸이 움찔대는 것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전에는 오히려 H 양 쪽에서 내게 접근해 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내가 먼저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달려가면 또 그쪽에서 어색해 할 건 또 뭐람? 뭐냐! 뭐냐고!
 그렇지만, 이 모든 짜증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해서 너를 좋아하는 까닭은, H 양아, 네가 처음이기 때문이야. 넌 모든 것의 처음이다. 날 그렇게까지 좋아해 주었던 것도 네가 처음이었고, 통화하자고 내게 끈질기게 부탁했던 것도 네가 처음이었고, 전화로 노래를 불러준 것도 네가 처음이었고, 쉬는 시간마다 날 찾아와서 자는 나를 깨우고는 산책을 가자고 했던 것도 처음이었어. 넌 내 처음이야. 내가 누굴 좋아하는 건, 그래서 왜 문자가 오질 않나 하고 조초해 하는 것은 네가 처음이다. 넌 모르겠지? 넌 내가 처음이 아니겠지? 너에게도 처음인 누군가가 있었겠지? 그렇지만 네 처음과 나의 처음은 그 크기가 달라서, 내가 네게 어떤 의미인지 네가 알게 된다면 깜짝 놀랄 거야. 그러니까 말은 하지 않을게. 그냥 알아 주었으면 한다.
 좋아. 여기다가 대충 쏟아부었다. 아직 마음속에 응어리진 말들이 많긴 하지만 그건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건 그냥 담아두겠다. 언젠가 H 양을 좀 덜 좋아하게 된다면 그땐 회포를 풀어낼 수 있겠지. 사실 지금도 노력 중이다. 더 덜 좋아하도록 노력 중이다.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고, 새로운 친구와 많이 얘기한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데, 내가 지금 다른 친구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H 양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질투를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행동이 아닌가 하고. 그냥 넘어가자. H 양을 잊든, H 양이 질투를 하든, 뭐든 효과가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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